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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60부터

방거사 2012. 1. 25. 19:39

인생은 60부터

 

방종현

 

‘수고한 당신 떠나라’

TV에 나오는 광고 문구이다. 가족을 위해 수고했으니 여행을 가든 어디를 가든 쉼을 가지라는 뜻이다. 그동안 노고에 보상 차원으로 당신은 충분히 대접을 받을 만하다.’라고 감성 조로 권하는 알량한 광고인 셈이다.

 

60갑자를 조금 넘겨서 정년퇴직했다. 처음 몇 달은 꿀맛 같은 나날이었다. 늦잠을 자도 되고 점심에는 무얼 먹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집사람이 알아서 내가 좋아하는 갈치찌개도 식탁에 올려주니 왕후장상이 부럽지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해지고 일상에 혼란이 왔다. 복장부터가 그렇다. 평생을 넥타이를 맨 생활을 해서 그런지 오히려 노타이가 부자유스럽게 느껴진다. 습관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몇 달만 더 지나면 해소되리라 보지만 단조로운 일상이 문제다. 종일 먹고 자고 책 보고 수성 못을 돌거나 동네 뒷산을 오르거나 그게 전부다. 석 달이 지나자 집사람한테서 불편한 기미가 느껴진다. 점심 문제로 발목이 잡혀 외출을 못해하는 눈치다. 결자해지라고 내가 먼저 제안을 했다. 간단히 준비해 놓고 볼일 보라고 했더니 좋아하는 기색이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그 정도는 손수건 접듯이 접어주어야 한다. 어떤 날은 친구들과 어울려 있어 미안하다며 저녁을 혼자 해결할 수 없겠느냐고 어설픈 코맹맹이 소리로 부탁해오는데 거절할 수가 없어서 이번에도 지전(紙錢) 접듯 접어주었다. 돈도 접어야 지갑에 넣을 수 있지 않은가?. 꿈같은 날이 흘러가던 어느 날 집사람과 작은 충돌이 있었다. 용돈 때문이었다. 처음엔 필요할 때마다 말씀만 하라며 제법 통 크게 말하는 마누라가 부처님처럼 보였다. 그러나 필요할 때마다 돈을 달라는 것도 한두 번이지 여러 차례 얘기하려니 귀찮기도 하고 해서 아예 월정액으로 달라 했더니 얼마면 되겠느냐고 물어온다. 다다익선이지 했더니 언뜻 집사람 얼굴에 파문이 인다. 몇 번의 흥정? 이 있는 후 결정이 났다. 흡족지 못하나 곳간 열쇠를 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것이 세상 이치가 아닌가. 애당초 곳간 열쇠를 맡긴 게 불찰이지만 어찌하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자고로 칼자루를 쥔 甲의 힘이 乙의 입장을 유보하게 하는 게 상례라 이번에도 접고 또 접어주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내 인생을 위한 새로운 전환점으로 살아보리란 결심을 하고 市에서 운영하는 복지관을 찾았다. 60세 이상이라야 등록자격이 있다 한다. 자격은 된다. 시간표를 보니 탁구, 서예, 민요, 볼륨댄스, 파티댄스, 컴퓨터 등등 25가지나 된다. 전부 다하고 싶은 욕심이 앞서나 과욕은 금물이다. 대학에서 은퇴한 오상태 박사가 강의하는 한문 고금소총이 있어 들어보니 해학이 있고 반전에다 카타르시스가 있어서 등록하고 평소 좋아하는 시조창도 등록했다. 욕심을 내서 민요를 등록하니 장고는 덤으로 배울 수 있어 좋다. 학창시절 교내 백일장에서 상을 받은 게 빚이 되어 문학이란 화두는 늘 들고 있었다. 이참에 수필과 지성 아카데미에도 등록하니 나날이 즐거운 하루다. 시중에 떠도는 백수들을 패러디한 말이 있다. 장(늘)노는 사람을 ‘장로’라 하고 목적 없이 사는 사람을 ‘목사’라 한단다. 나야말로 백수이면서도 바삐 살다 보니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을 듣게 생겼다. 정년을 맞이하고 새롭게 시작한 인생의 전환점에 섰다. 때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마음의 양식도 곳간에 채우고 여행도 다니며 남은 생을 보내련다.

"인생은 60부터야.“를 외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