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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마련

방거사 2012. 1. 25. 19:42

장지 마련

                                                                                                       방종현

  ‘내 장지 마련해 놓고 가면 좋잖아’

요즘 텔레비전을 켜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다며 권하는 보험 광고멘트다. 이제 죽는 것도 마음대로 죽을 수가 없게 되었다. 자식들에게 눈치 안 보일러면 죽고 난 뒤에 장례비가 나오는 보험 하나쯤은 들어놓아야 할 모양이다.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동방의 등불이라고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찬양한 대한민국이 아니든가.

 효에 관한 한 어느 나라보다 자랑할 만한 우리나라이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3년간을 묘지 옆에다 움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했나 하면, 그게 어려우면 집안에다 빈소를 차려놓고 조석으로 살아계실 때와 같이 밥을 지어 상식 올리고 초하루 보름 삭망에는 슬픔을 나타내는 뜻으로 호곡(哭)까지 하며 3년 상(喪)을 내기도 했다. 효심이 극진한 사람은 부모님을 지켜 드리지 못한 죄인이라고 하늘에 부끄럽다고 삿갓을 쓰고 지내기도 했다. 어릴 때  진외가 할아버지께서 겨울에도 삿갓을 쓰고 장에 가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부모님 생전에는 출필 고 반필면(出必告 反必面)이라 해서 집을 나갈 때는 반드시 출처(出處)를 알리고 돌아오면 반드시 얼굴을 뵈어 안전(安全)함을 알려 드려야 했다. 세월이 변했다 해도 품 안에 자식들이 행선지는 밝히지 않아도 다녀오겠다는 인사와 다녀왔다는 인사는 지금에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뿐인가 부모님께 조석으로 문안드리며 따듯한 밥 지어 올리고 주무실 땐 잠자리도 펴 드리고 이불 밑에 손 넣어 방이 따듯한지도 살펴 드리고 불편함은 없는지 안색도 살펴보고 그렇게 살아온 우리 부모님 세대였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이해조차 가지 않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덕목이라 여겼다. 성현도 여세 추이(與世推移)라 했다. 성현도 시속에 따른다는 얘기이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해 가고 있다. 풍속도 변하고 있다. 지난 100년의 세월의 변화는 근래 10년 세월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변화무쌍이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일 것이다. 우리가 부모님께 받았던 사랑을 자녀들에게 줄 때 아이들이 자라면서 우리에게 되갚아주는 주는 즐거움일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방긋방긋 웃어줄 때 그 눈 속에 빠져들었고 옹알이 단계를 거처 걸음마를 하고 ‘엄마’ 소리를 처음 낼 때 그 희열은 두고두고 잊히지가 않을 것이다.

 이제 내려놓는 법도 알아야 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내 자식만은 아닐 것이다 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편하다. 자식은 자라면서 웃음과 감동을  준 그것으로 보상받았다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 마음먹으면 혹시 소홀해도  마음 상하지 않고 편하게 넘길 수 있다. 죽음이란 누구나 두려운 것이다. 친구도 재산도 사랑하는 가족도 모든 것을 다 남겨두고 가는 마지막 길이다. 그렇게 두려운 길을 보험금을 매달 낼 때마다 죽음을 예견하며 공허해질 감정은 헤아려 보지는 않았을까? 작금은 광고 홍수시대이다. 유익한 광고도 있지만, 광고 때문에 불필요한 소비 풍조가 일어나고 감정을 헤치는 광고도 있다.

 사랑으로 키운 자녀가 설마 내 부모를 개천에 버릴까?  죽어서 장지 마련하라고 부추기는 알량한 광고는 노인들을 슬프게 하고 있다.

(은행나무 2011 제2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