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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만족

방거사 2012. 4. 5. 18:00

 

대리만족

 

 

방종현

 

 

시중에 떠도는 말 중에 딸 둘에 아들 하나면 금메달이라는 말이 있다. 딸만 둘이면 은메달이고 딸 하나에 아들 하나면 동메달이며 아들만 둘이면 목메달이라고 한다. 나는 딸 셋에 아들 하나를 두었으니 다이아몬드 메달쯤 해당할까? 지금은 부러움을 받지만 셋째와 넷째를 낳을 때는 산아제한에 역행한다며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해 괄시받던 신세가 이렇게 세상이 변했다.

요즘 길을 가다가 배부른 여인을 보면 국가경쟁력에 이바지한다 싶어 사랑스러워 보인다. 셋째 딸이 중학교 교사로 있다가 둘째 아이를 낳기 위해 휴직 중에 있어 더욱 애정 어린 눈길을 보낸다.

 

결혼해서 첫 딸을 낳았을 때만해도 첫딸은 살림밑천이라고 애써 의연한 척했다. 두 번째 딸을 낳으니 보모님은 물론 할아버지께서 심기가 편치 않으셨다. 우리 때만 해도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고 아들은 꼭 있어야 한다고 할아버지께서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그러나 다음엔 아들을 낳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그럭저럭 넘어갔다. 셋째가 또 딸이고 보니 부모님께 알리기가 망설여져 곤란을 겪기도 했었다. 내가 장손이라서 부모님은 물론 조부모님의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사람은 죽어도 아들 하나를 꼭 낳겠다는 의지로 마음고생이 많았다. 잇달아 낳으면 또 딸일 것이리라는 생각으로 터울을 띄우기로 했다. 셋째 딸을 낳은 후 6년 만에 아들을 낳았을 때 천하를 얻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얻은 아들이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께서는 손자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당신들 품에 안겨 드리지 못해 불효한 마음이다.

 

내가 근무했던 직장은 4년 주기로 순환근무를 하는데 첫딸은 대구에서 출생했고 둘째는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셋째는 부산에서 출생했다. 돌고 돌아서 넷째 아들은 대구에서 출생했다. 전국 체육대회가 열리면 우리 집 아이들이 각자 자기 출신지를 응원하기도 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미국의 속지주의 원칙에 따르면 출생지가 미국이면 미국 시민권을 준다. 우리 아이들이 자기가 태어난 곳을 고향으로 주장하는 것도 일견 이유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요즘은 본적지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지만, 예전엔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부모님 고향을 따라서 자기 고향이 되었다.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결정되는 것보다 미국의 속지주의처럼 태어난 안태고향을 자기 고향으로서 생각하는데 동의 할만도 하다.

 

딸이 있어 좋다. 딸이 셋이다보니 요즘 우리 집사람의 신수가 달라지고 있다. 세 딸이 번갈아가며 제 엄마에게 철철이 유행에 뒤지지 않게 옷도 장만해주며 코디도 해주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요즘 이슈가 되는 영화가 있으면 친구들과의 대화에 뒤처진다며 극장에 가라며 표를 사서 주기도 한다. 딸들이 엄마의 말벗이 되고 맛난 음식도 같이 먹고 고민도 함께 나누는 친구가 된다. 딸이 많으면 금메달이란 말이 왜 금메달인지를 실감한다.

 

내가 초등학교 학예회 때 독창으로 노래를 불러 많은 박수를 받았다. 풍금 반주를 해주신 선생님께서 목소리도 우렁차게 아주 잘했다고 칭찬을 해 주셨다. 큰 딸이 성악가가 되어 선생님께 받았던 칭찬을 대신해 드린 셈이다.

첫딸은 음대를 나와 이태리 유학까지 마치고  프리마돈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성악가이다.

내 어릴 때 꿈은 똘망한 눈동자의 아이들이 좋아 선생님 되고 싶어 했다. 내 꿈을 둘째가 학원을 하며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으니 내가 아이들을 지도하는 듯 반갑다. 

나는 여러 과목 중에 국어가 좋고 성적도 제일 좋았다. 셋째 딸이 국어 선생님 이 되어 내가 하고 싶었던 국어를 평생을 할 수 있어 부럽고도 고마운 일이다.

 

아버님께선 내가 법대를 가서 한미(寒微)한 집안을 일으키라는 기대를 하셨다. 나는 판검사는커녕 면서기도 못해봤지만 내 하나아들이 병든 사람을 고쳐주는 의사가 되고 며느리까지 의사로 맞으니 한미한 집안을 일으키라는 내 아버지의 소원을 내 아들이 대신해 줄 것 같아 기대를 한다. 내가 가지못한 길을 그들이 가고 있으니 나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