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그늘집이 있는 농장
그늘 집이 있는 농장
8기 방종현
지금 어디 있느냐는 친구의 전화에 “응 나 그늘 집에 있어” 하자,
어느 컨츄리 클럽이냐 되물어온다.
“우리 집 옥상이야” 하자 속았다는듯
"뭐 옥상 하하하" 호쾌하게 웃어자친다.
골프클럽 필드 중간에 잠시 쉴 수 있는 곳을 흔히들 그늘 집이라 부르니 ,
아마 골프장에서 라운딩하고 있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우리 집 옥상에 멍석크기만한 텃밭을 일구고, 그 옆 살평상위에
원두막처럼 꾸며놓고, 그곳을 그늘 집이라 부르며 멍석만한 밭떼기를 농장이라 부르니,
나 스스로가 큰 부자가 된 기분이다 .
무엇이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멍석만한 텃밭이지만, 공사장에서 버린 각목을 얻어와
바둑판 마냥 구획정리를 했다.
그렇게 해두어야 밭을 밟지 않고, 종횡으로 다니며 작물관리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한켠에는 부추를 심었다.( 흔히 우리경상도에선 정구지라 부르기도 한다.)
그 옆에는 울릉도 특산물인 취나물을 심었는데, 그 취나물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집사람 언니니까 나에겐 처형이 되는 분이신데,
처형의 따님이 우리 집사람보다 한 살 위이니
집사람에겐 엄마와도 같은 언니이다 .
하루는 처형이 우리 집에 놀러 오셨길래 옥상 텃밭을 자랑했더니 피식 웃으며 하시는 말씀이
“멍석만하구만" 하시더니 며칠 후 울릉도산 취나물이라며
대여섯 뿌리를 흙과 함께 담아가지고 오셔서 우리 텃밭에 심어주셨다.
해마다 뿌리에 새싹이 돋고, 그럴 때마다 분식(分植)을 하곤 해서
지금은 100여포기도 넘을 정도로 불어났다 .
순을 따서 데쳐 양념에 조물조물 무쳐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어느 해 정월 보름날은 처형께서 혼자 먹기 재미없다시며
찰밥을 해서 경주에서 대구까지 솥째로 싸가지고 와서 같이 먹자고도 하였다.
딸 같은 동생을 애면글면 사랑하신 애정이 많으신 분이다.
취나물을 먹을 때마다 10년 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심성고은 처형의 정이 오롯이 느껴져 애잔한 마음이 든다.
우리 농장의 일등공신은 무어니 해도 상추와 고추다.
올해도 3월 23일에 매운맛, 약간 매운맛, 아주 매운맛(땡초)으로
100여 포기 고추 모종을 부었다.
자주 물을 주며 오지조지 달린 풋고추를 이웃과 나누어 먹을 생각에
지금부터 마음이 설렌다.
여름이되면 각자의 상념이 있겠지만 나는
멍석 깔고 누워 모깃불을 지펴놓고, 옥수수 먹으며
할머니의 구수한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듣던 내 유년시절이 떠오른다.
견우성과 직녀성이 칠월칠석날, 일 년에 딱 한 번만 만난다는
슬픈 얘기에 마음 아파하다가 잠이 들기도 하고.
잠든 아이 모기 물세라 설렁설렁 부채질하는
할머니의 손에 쥔 떨어진 부채 살이 더위를 밀어내고,하늘이 낮게 내려앉은 밤
뭇별들이은밀한 대화를 나누다 다투는지 이따금 뿌려지는 별똥별의
불꽃향연에 놀라 눈을 꼭 감기도 했던 기억도 떠오르고,
달빛 받은 박꽃이 초가지붕을 하얗게 뒤덮던 정경도 떠오른다.
지금은 도회의 내 집 옥상에 마련한 멍석만한 텃밭과 그늘 집을 두고
골프장을 낀 큰 농장을 갖춘 대저택이라 생각하며
마음이 풍요로운 부자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