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하마비(下馬碑)
하마비(下馬碑)
방 종 현
‘대소인원 개하마’
주문(呪文)이 아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곳에서는 말에서 내려 걸어가라는 소리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대소인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 대소인(大小人)은 당하관인 종3품 이하 관리를 말하고 원(員)은 당상관인 통정대부로 정3품 이상을 말한다. 개(皆)는 모두를 뜻하니 벼슬이 낮거나 높거나 할 것 없이 여기 와서는 모두 하마(下馬) 즉 말에서 내려 걸어가란 뜻이다.
궁궐은 물론이고 종묘나 서원 또는 향교 같은 곳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비석이다.
궁궐은 임금님이 계신 곳이니 당연히 말에서 내려야 하고, 향교에도 공자님을 배향한 곳이니 예의를 차리라는 의미에서 말에서 내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외가 있기도 하다.
‘병마절도사이하 개하마’ 또는 ‘수령이하 개하마’ 이런 비석을 세워놓은 곳도 있다.
병마절도사는 종 2품인 관찰사가 겸무를 한다. 관찰사는 지금의 도지사쯤 되는 직책이다.
수령은 군수와 현감쯤 되니 흔히들 고을 원님이라 부르는데 지금의 군수 또는 구청장쯤 되는 직책이다.
따라서 자기가 주제하는 관청에서는 자기보다 낮은 직급은 말에서 내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자기보다 높은 사람은 말을 타고 들어와도 좋다는 뜻이다.
벼슬을 빌미로 권위를 누리려는 알량한 심보다.
하마평(下馬評)이란 말도 하마비(下馬碑)에서 기인한 말이다.
주인이 일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가마를 메고 왔던 하인이나 말고삐를 잡고 왔던 말구종이나 마부들이 기다리고 있어야했다. 주인을 마냥 기다리는 동안 온갖 잡담을 나누며 별의별 얘기를 다 할 것이다.
그들 주인이 모두 고급관리라 자연스레 승진이나 좌천 따위의 인사이동에 관계된 잡담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에 연유하여 관직이동이나 관직임명 후보자의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하마평(下馬評)이라 부르게 되었다.
작금에도 개각설이 나올 때마다 신문지상에 자천타천 오르내리는 인사이동 예측을 하마평이라 부른다.
조각(組閣) 놀이라는 것도 있다.
역대 인물 가운데서 적임자를 뽑아 내각(內閣)과 나라의 요직을 구성하는 놀이를 말한다. 식자층들이 심심파적으로 하는 놀이로 스스로 임명권자가 되어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어 재미있는 놀이라 하겠다. 조선시대 고불맹사성 정승이나 청백리정승 황희를 국무총리로 올리기도 하고 고구려의 재상인 을파소를 선택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이율곡을 교육부장관에 신사임당을 여성부장관으로 하는 등 지금말로 하자면 시대를 초월해서 드림팀을 구성한다는 말이다.
위로 임명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 있게 처리하는 과단성 있는 장관감이 과연 얼마나 될까?
세월이 흘러도 추천하고픈 사람이 있다. 이북의 호전적인 집단 앞에 추호의 흔들림을 보이지 않는 국방장관에 임명된 김관진 장관이면 어떨까 생각된다.
지난 정부 때는 소위 햇빛 정책으로 양식이 부족하다면 쌀을 주었고 비료도 주었고 건설장비도 주면서 북한을 달래 왔었다. 타성에 흐르다보니 시비를 걸어와도 응석으로 받아 주었다. 북이 도발해오면 지휘계통에 따라 중대장은 대대장에게 대대장은 연대장에게 다시 사단장에게 그렇게 해서 최종지휘관에의 명령을 받아야 했다. 그러자면 연평도 피격같이 이미 치명적인 피해를 당한 뒤 명령이 떨어지기도 한다.
김관진 장관이 전방을 시찰하면서 병사들에게 “북의 공격을 받으면 쏠까요, 말까요 묻지도 말고 바로 응사를 하라”고 지시했다. 보고는 나중에 해도 좋다고 했다. 얼마나 자신에 찬 모습인가. 무한한 신뢰감이 간다.
북에도 따끔한 경종을 울린 셈이다. 힘 있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들지 않는다. 아니 함부로 대들지 못한다.
국민은 이런 장관의 말 한마디에 신뢰를 보낸다.
신뢰를 잃어버리면 나라 사랑도 없어진다.
시대가 변했다. 각 관청마다 ‘어서 오십시오’ ‘무얼 도와 드릴까요’를 써붙여 놓고 국민의 공복임을 자임한다.
세상은 변화한다 ‘누구나 들어오십시오’
현대판 ‘하마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