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거사 2011. 9. 6. 20:29

택호(宅號)

 

 

방 종 현

 

내 조모님은 ‘산전댁’ 이고 내 어머님은 ‘서동댁’ 이라는 택호로 불리었다.

자라며 글자를 깨칠 무렵이 되어서야 당신들께오서 자라신 동네이름으로 택호를 정해 부른다는 걸 알게 되었다.

택호에는 친근감 이 있어 뚝배기 된장 같은 맛이 난다.

누구나 쉽게 불러도 거부감이 없다. 택호가 없다면 아무 게 씨라 불러주겠지만 조심스런 자리가 아니면 대게 마구잡이로 막 이름을 부른다. 하기 사 나라님 도 내 앞에 없을 땐 그냥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마는.....

요즈음은 마을 곳곳마다 동네어귀에 이정표를 세우고 행정구역상 지명과 함께 괄호를 해서 사연이 있을 성싶은 속칭까지도 친절하게 표기해두어 처음 가는 마을이지만 지명읽기가 심심하지 않아서 좋다.

고향의 면소재지 삼사십리 안팎은 자라면서 들어서 알지만 그 너머동네는 모르는 곳이 더러 있다.

연전에 사업상 아는 이의 고향에 문상을 갔는데 간곳이 ‘우만리’ 였다. 내 조모님과 친하게 지내셨던 ‘우만댁’ 마나님이 생각났다. 사람 좋은 우만댁 마나님은 늘 넉넉한 웃음과 속정이 깊었던 분이어서 우만 리 가 처음 오는 동네가 아닌 듯 반가움마저 들었다.

 

내 집안에 복내(服內) 촌수 벌로 나에게 숙 항렬이 되는 ‘귀도’ 아제가 있었다. 조실부모하고 혼자 몸이 되어 남의 집 고용살이로 살아가는데 조금은 생각이 모자라 아희들의 놀림감이 되곤 했다.

장가를 못 갔으니 택호도 있을 턱 이 없어 아이들도 ‘귀도’ 어른들도 ‘귀도’라 부르니 나이 쉰이 다 된 터인데도 뉘 집 개 이름 부르듯 했다.

어느 날 어찌어찌해서 우리 마을까지 흘러들어온 여인이 있었다. 그도 조금은 모자라는 이였는데 집안 어른들이 ‘귀도’ 아제에게 택호라도 갖게 하자는데 의견을 모으고 여인을 설득해서 우격다짐으로 신방을 꾸려주었으나 사흘 만에 가버리고 말았다.

하룻밤 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했는데 성주에서 왔다는 그 여인의 말만 믿고 그 후로는 귀도아제가 ‘성주양반’으로 살다 가셨으니 몽달귀신은 면 한 셈이다.

내 것만 가지겠다고 고집하지 않고 양보를 잘하는 사람을 바보 같다는 표현을 하는 세상이 되었다. 내 것만 알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그런 사람을 바보 같다 는 생각을 할지모르지만 내손에든 것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을 볼 때 오히려 이쪽이 얼마나 불쌍하게 보았을까 생각하니 나부터 도 뒤가 화끈거린다. 귀도아제는 욕심 없이 착하게 살다가 가신 분이다.

 

요즈음엔 고향을 지키는 젊은이는 없고 거의 대처로 나가서 살게 되니 대개는 택호가 없이 산다.

내 조부님은 4형제이시고 모두 삼형제씩을 두셨으니 아버님 종반이 12분이 된다.

그 12종반이 각 두 세 명이상 자녀를 두어서 내 제종반이 남녀합해 서른 명이 넘어 집안대소사에 남이 없어도 우리끼리만 있어도 잔치가 될 정도 로 벌족이다.

이제는 머리가굵어진 동생들에게 막 이름을 부르기도 그렇고 누구아버지라 부르려니 조카들 이름을 다 알 수도 없기에 택호를 정해 부르기 로하고 부인들의 친정동네를 택호로 부여했다.

내 집사람은 경주출신으로는 우리집안엔 처음이라서 자연히 ‘경주댁’으로 선택이 되어 내 어머님이 받으셨던 택호의 서운함을 서열 두 번째인 내가 대신 보상 받은 셈이다.

사연인즉 어머님과 한마을에서 사시다가 우리집안으로 먼저 시집오신 5촌 당숙모께서 당신들이 사셨던 동명을 먼저 선점해버리자 그 뒤 시집오신 내 어머님은 같은 택호를 사용할 수가 없어서 우리 동네 기준으로 어머님 친정동네가 서쪽동네에 있다고 별 뜻도 없는 ‘서동댁’ 으로 낙점하고 말았다한다.

 

그래서 큰일 치르고 한자리에 모여 논의 끝에 제종형제 부인 들이 같은 지역에서 시집온 경우엔 장유유서에 따라 큰 지명은(도시명) 형이 사용하고 작은지명(洞名)은 아우가 쓰기로 했다.

그럼 우리마을 사람과 결혼 하게 되면 어떻게 부를까 걱정 되겠지만 한동네이니까 ‘한동댁’ 하면 되고 자기 동네라고 ‘자동댁’ 해도 되고 내 동네라서 ‘내동댁’ 해도 되겠다. 한마을에서 살다가 혼인한 ‘지산댁’으로 부르는 숙 항렬 아지매 가 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산(山)밑 동네라고 자기 산 이 경상도 말로 지산 밑이 되니 ‘지산댁’ 으로 정했다한다. 다 해결하는 방법은 있기 마련이다.

 

시집온 새 색시에게 택호를 부여 한다는 건 새색시를 배려하는 깊은 뜻도 있다.

자신이 자라온 정든 산천을 두고 산 설고 물 설은 어쩌면 생활습관 마저 다른 미지의 땅에 혼자 내던져진 처량하고 외로울 새색시 에게 자기가 자란 고향 이름으로 'OO댁’이라 불러질 때 그 친근감이야말로 백만 원군을 얻은 기분이겠고 큰 위안이 되었으리라.

또 한편 택호를 불러주는 그 이면에는 은연중 새색시 에게 이름값을 하라는 무언의 압력이 들어있는 깊은 뜻도 있다.

되먹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되면 동네 창피해 못살겠다는 말을 한다.

자기가 자란 동네이름으로 택호를 불러 주게 되면 자기 동네이름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행동을 조신하게 되니 택호란 이렇듯 새색시를 배려하기도하고 의무감도 주기도하는 심오한 뜻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