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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공선사

방거사 2011. 12. 27. 05:45

 

지공선사

 

 

                                        방종현

 

   지공선사를 아시는지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명대사나 초의선사 또는 거사(居士)니 하는 거창한 불교의 호칭을 설명하려는 게 아니다. 나이가 65세를 향해가는 초로의 한 남자가 겪는 삶의 이야기를 하려한다.

  우선, 지공선사가 누구인지 밝히기 전에 회식자리에서 술잔을 들고 ‘위하여!’를 한 번 외쳐보자. 단합을 위해 외치는 구호인 건배사는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5.16직후에는 ‘재건합시다!’가 많이 사용되었고, 최근에는 언뜻 들어서는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아주 다양한 구호가 사용되고 있다. 변 사또! 라는게 있다 (변)함없이 (사)랑하고 (또)사랑하자 라는 뜻이란다. 또 있다. 개나발! 이란 것도 있는데 (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 라는 뜻이란다. 이 모든 것을 뭉뚱그려 너도 위하고 나도 위하고 모두를 위해 (위하여!)가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자, 이제 지공선사가 누구를 뜻하는지 소개해본다. 지공선사는 지(하철 표를) 공(짜로) 타는 사람들을 점잖게 부르는 말이다. 만 65세가 넘어야 지공선사(地公線士)의 대우를 받는다. 그런데 왜 하필 선사란 말인가? 대사(大師)나 선사(禪師)에는 스승 사(師)를 붙이는데 지공선사에게 스승이란 말은 좀 과하겠고, 그냥 선비 사(士)자 정도는 붙여줘도 무난할 것 같다. 그리고 지하철이 선로(線路) 위를 달리니 줄 선(線)자를 붙여서 지공선사(地公線士)로 부르면 좋겠다고 내 나름대로 의미를 만들어 보았다. 나이를 먹어 능력은 떨어지고 그나마 지하철 표를 공짜로 주니 고마운 일이다. 국가발전을 위해 청춘을 다 바쳐 노력한 결과 이만큼이라도 나라가 살만해졌으니 수고했다고 예우도 해주는 셈이니 복지가 좋아지고 있다.

  나 또한 내년이면 지공선사가 된다. 이제 인생길도 황혼 지는 마루턱에 올랐다가 서서히 하산하는 형국이다. 죽음이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이젠 눈도 멀고 귀도 멀어지고 근력도 떨어지니 모든 게 자신이 없어진다.

  어느 날 우리 마눌님 발바닥에 가시가 박혀 혼자서 뽑아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나도 돋보기를 쓰고 같이 찾아보니 끝이 보일 듯 말 듯 하나 도무지 뽑히지가 않았다. 아들, 딸 모두 제각각 둥지를 틀어 떠난 큰 집에 두 양주(兩主)만 동그마니 남아있으니 눈 밝은 사람은 없고, 아무리 애를 쓰고 며칠을 씨름해도 해결이 안 된다. 가까이에서 살고 있는 막내딸에게 부탁해보자는데 의견일치를 보고, 일요일까지 기다렸다가 이웃동네 살고 있는 딸네 집에 갔다. 딸이 뾰족한 바늘 끝으로 몇 번 끄적거리더니 금방 뽑아내는 게 아닌가?

  젊음이 좋다, 눈이 밝아 좋다.

  내가 지공선사가 되려면 아직 일 년이나 남았는데 작년 다르고 금년 다르니 걱정이 앞선다. 귀는 멀더라도 골치 아픈 세상사 안들으면 되겠지만 눈이라도 밝아야 우리 마눌님 가시라도 뽑아 줄텐데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