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분을 아시나요
사분을 아시나요
방종현
경상도는 다른 지방보다 일본말을 더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까운 부산포를 통해 일본과 교역이 빈번히 일어났기 때문이다. 지금은 교통의 발달과 미디어의 소통으로 전국이 일일생활권이지만 옛날엔 영남에서 서울을 가려면 보름이나 걸려야 하기에 지역 간의 정체성으로 말미암은 결과라 생각한다.
소위 좀 배웠다는 이들도 거리낌 없이 접시를 ‘사라’로, 젓가락을 ‘와라바시’로, 시원하게 한 맥주를 ‘히야시’ 잘된 ‘삐루’로, 이쑤시개를 ‘요지’로 부르기도 한다. 그 외에도 아주 많지만, 지금은 별로 쓰이지 않는 말 중 '사분'이라는 게 있다. 비누를 말함인데 60대 이상이어야 알고 있을 정도로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다. 내가 군 생활을 할 때는 북에서 김신조 일당을 무장공비로 내려보내 청와대를 까부수겠다고 침투했을 때였다. 우리 부대에 마산에서 입대해온 병사가 있었다. 지금은 중졸만 해도 보충역으로 편입될 정도지만 그때는 무학자들도 가끔 있었다. 그 병사는 글을 쓸 줄 모르고 전형적인 촌스러운 행동을 하는 친구인데 집에 보내는 안부 편지를 내가 대신 써 준 기억도 있다. 원체 엉뚱한 짓을 잘해서 그 친구를 고문관으로 부르기도 했다. 군대에서는 아주 엉뚱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고문관이라 부른다.
사분에 얽힌 재미난 일화가 있다.
군에는 야간에 암호를 사용하는데 초저녁에 그날 밤 사용할 암호를 하달받고 그걸 숙지하고 근무지로 가서 야간 보초를 설 때 사용한다. 어느 날 밤 고문관 같은 경상도 출신 병사 하나가 야간 보초 근무 교대를 하러 갈 때 사달이 벌어졌다. 근무초병이 암호를 묻자 그날 밤 암호는 비누였는데 비누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 집에서 사용하던 대로 ‘사분!’으로 대답한 모양이었다. 초병이 다시 '암호!' 하자, 그 병사는 다시 더 큰소리로 “사분이라 카이” 암호를 못 대면 사살해도 되는 근무초병수칙이 있지만 억센 경상도 사투리와 그 친구의 평소 행동이 워낙 특별나기에 살아난 셈이다. 고문관은 어느 부대에서나 항용 있었다.
군대 시절의 고문관 친구를 죽일 뻔도 했던 비누는 자신의 몸을 닳아가며 남을 깨끗이 해주는 살신성인의 품성을 갖고 있다. 마치 촛불이 자신의 몸을 태워가며 세상을 밝히듯 말이다. 비누가 그냥 비누인가, 더러움을 날려버린다는 뜻에서 날 비(飛)자에 더러울 누(陋)자를 써서 비누(飛陋)라 하지 않는가.
세상이 요지경 속이다. 국민의 공복이 되겠다고 청문회에 나섰던 고관들의 궁색한 답변을 들으면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아흔아홉을 가진 자가 백을 채우려는 저 끝없는 욕심, 그 사악한 마음들을 비누로는 씻을 수 없을까? 세상이 뒤죽박죽으로 바람이 잔뜩 든 거품 덩어리다. 명절 연휴에 조상 차례는 뒷전이고 국제선 공항이 북새통이다. 빚을 내서라도 하기휴가를 갔다 와야 대화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보다 성냥 곽처럼 생긴 아파트값이 더 비싸다. 우리 주위에 실상보다 허상인 거품이 더 많다. 불필요한 거품을 씻어 낼 수 있는 성능 좋은 사분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