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지지
노마지지(老馬之智)
방 종 현
‘늙은 말에게 길을 묻다.’
고사성어에 나오는 말이다. 말뜻의 원전을 살펴보면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桓公)이 명재상 관중(管仲)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고죽국 정벌에 나섰다. 전쟁을 끝내고 돌아오던 중 혹한 속에 길을 잃고 말았다. 어디로 가야할지 진퇴양난에 빠져 군사들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관중이 환공에게 말했다. "늙은 말의 지혜가 필요합니다(老馬之智可用也)". 즉시 늙은 말의 고삐를 풀어놓고 앞장 세웠다. 말이 가는 곳을 따라가자 얼마 되지 않아 과연 큰 길이 나타나 무사히 돌아왔다고 한다. 한비자(韓非子) 설림(說林)편에 나오는 '노마지지(老馬之智)'의 고사다.
사람도 나이가 많으면 경험이 풍부해진다. 경험을 얻기까지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 소중한 경험을 활용해야 하는데 작금은 정년퇴직이라는 제도로 다 쓰지도 못하고 사장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패기만 있고 연륜이 부족한 젊은 세대가 개혁과 변혁만 주장하다가 일을 졸속으로 그르치게 되는 수가 왕왕 있어왔다. 잘못 되었을 때 되돌리기엔 시간과 금전의 손실이 클 것이다.
최근 구제역으로 나라 안이 스산스럽다. 일부에서는 백신주사를 놓자는 제안도 했으나 무시하고 구제역으로부터 ‘청정국가’라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 백신을 사용하지 않아 매몰 처리한 비용과 가축을 돈으로 환산하면 3조 원대가 넘는다 한다. 반대로 육류를 수출해서 얻어지는 경제적 이익은 2000억쯤 된다하니 사후약방문으로 이제 와서 백신을 사용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소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 된 셈이다. 국가가 어려운 일에 처하게 되면 대통령도 나라의 중대사를 국가 원로를 찾아서 자문을 구한다. 나랏일도 그러할 진데 우리들 일상사에서도 노인의 경험은 대단히 클 것이다. 경험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어떤 일을 성사시키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와 땀과 눈물로 성공이 있었을 것이다. 뒤따르는 후인들은 선인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실을 귀감 삼아 시간도 벌고 금전적인 이익까지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경험은 그냥 얻어지는 건 아니다. 나이가 만들어준다. 나이를 먹으려면 떡국을 먹어야 한다는 우스게 소리가 있다. 나이야 떡국을 먹어도 먹고 안 먹어도 먹겠지만 떡국을 정월 초하루에 먹기에 나이와 연관 짓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금이야 물자가 풍부하니까 아무 때고 생각이 나면 떡국을 먹을 수 있지만 그 당시의 팍팍한 우리네 사정은 그렇지 않았다. 설 명절이라야 쌀로 만든 떡국을 먹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밖에서 놀다 넘어져 무릎이 깨져 울면서 들어오면 할아버지께서 "이놈이 헛 떡국을 먹었나, 와 그래 잘 넘어지노!"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나이를 먹는 건 누구나 뿌리칠 수 없다. 세월을 지내놓고 보면 늘 후회가 되어 되돌아보게 된다. 어느 기관에서 앙케이트 조사를 하여 세월을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무어냐고 물었더니 영어를 유창하게 해 보겠다는 사람, 운동을 열심히 해 보겠다는 사람,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사람 등 다양한 답이 많았지만 그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것은 공부를 좀 더 잘 해 보고 싶다는 답이었다 한다.
한생을 살아보니 책속에 길이 있었고, 책을 통해 지식도 얻었고, 목적하는 바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경륜은 지식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살아가면서 경험으로 얻어진 지혜가 있어야 한다. 관중이 찾던 노마지지도 경험으로 알아냈을 것이다. 우리 사회도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한 노인들을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폄하하는 일은 없어야겠다.